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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구원과 복수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 느와르의 절정

by aicarrolls 202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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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암살자 인남이 마지막 임무를 끝내고 태국으로 향하면서 시작되는 복수극이다. 딸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과 그를 쫓는 킬러 레이의 추적이 교차하며, 인간의 죄와 구원, 그리고 폭력의 순환을 치밀한 감정선으로 풀어낸다.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출연해 팽팽한 연기 대결을 펼치며,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감성적 서사가 결합된 현대 한국 느와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의 구원을 묻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죄와 구원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서사다. 홍원찬 감독은 전작 <오피스>에서 인간 내면의 어둠을 탐구한 데 이어, 이번 작품에서는 폭력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적인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영화의 제목부터 이미 종교적 함의를 지닌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Deliver Us From Evil)’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로, 인간이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구원은 결코 거룩하지 않다. 오히려 피와 총성, 죽음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영화는 킬러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복수자 레이(이정재)의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 인간의 운명과 속죄의 본질을 탐색한다. 결국 이 작품은 ‘악’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가를 묻는, 철학적 느와르다.

 

 

영화의 줄거리

영화는 일본에서의 암살 임무를 끝낸 킬러 인남이 은퇴를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과거 사랑했던 여인 요정이 살해되고, 그녀의 딸 유민이 태국에서 납치되었다는 소식이다. 인남은 마지막으로 태국으로 향하며, 아이를 구하기 위한 피의 여정을 시작한다. 한편, 인남의 마지막 암살 대상의 형제인 킬러 레이(이정재)는 잔혹한 복수를 다짐하고 인남의 뒤를 쫓는다. 태국의 어두운 거리, 인신매매 조직의 본거지, 부패한 경찰과 잔혹한 밀매자들이 얽힌 그곳에서, 인남은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붙잡고 싸운다. ‘아이를 구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트랜스젠더 조력자 유이(박정민)를 만나 함께 움직이게 된다. 유이는 생존의 감각과 인간적인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로, 인남의 차가운 복수극 속에서 유일한 ‘인간성의 불씨’를 상징한다. 마침내 인남은 아이를 구출하지만, 레이는 끝까지 그를 추격한다. 영화의 마지막 총격전은 구원과 파멸이 교차하는 비극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인남은 아이를 구한 뒤 자신은 총탄에 쓰러지고, 화면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끝난다. 피로 물든 구원, 그것이 이 영화의 결론이다.

 

 

등장인물과 배우들의 연기

황정민은 냉철한 킬러 인남을 연기하며, ‘감정이 없는 인간’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그의 눈빛 하나, 호흡 하나가 감정을 대신한다. 특히 유민을 구하려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절박함은 폭력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정재는 레이 역을 통해 한국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악역을 만들어냈다. 그의 존재는 악마적이면서도 묘하게 매혹적이다. 레이는 복수라는 명분을 가졌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상처와 공허가 뒤섞여 있다. 그의 움직임은 날카롭고, 대사는 짧지만 치명적이다. “지옥에서 만나자”라는 한마디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를 압축한다. 박정민은 유이 역을 통해 극의 온도 차를 조절한다. 유이는 냉혹한 남성들의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감정과 생명력을 유지한 존재로, 관객에게 잠시 숨 쉴 틈을 준다.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다. 세 배우의 연기 조합은 느와르의 냉정함과 휴머니즘의 따뜻함을 동시에 완성했다.

 

 

연출과 시각적 스타일

홍원찬 감독의 연출은 절제와 폭발이 공존한다. 그는 불필요한 대사나 감정 표현을 배제하고, 장면의 긴장감과 시각적 상징으로 서사를 전달한다. 영화 전반의 색감은 황혼빛과 붉은 조명으로 채워져 있으며, 이는 죽음과 속죄의 분위기를 강화한다. 태국의 슬럼가, 네온사인 아래의 거리, 습기 찬 호텔 복도 등 배경들은 인남의 내면을 반영하는 공간처럼 작용한다. 액션 연출은 정교하고 감각적이다. 실내 총격전, 차량 추격, 칼부림 액션까지, 리듬감 있게 편집되며 폭력의 미학을 구현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인남과 레이의 대면은 폭발적인 감정과 냉혹한 현실이 충돌하는 장면으로, 총성보다도 묵직한 정서를 남긴다. 음악 또한 영화의 정서를 이끌어간다. 모노톤의 배경음악은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마지막 장면의 느린 피아노 선율은 잔혹한 세계 속 인간의 슬픔을 담담히 마무리한다.

 

 

다만 악세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영화는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인남의 구원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피와 총탄으로 얻은 인간적 구원이다. 그는 결국 딸을 살렸지만, 그 대가로 자신을 희생한다. 이 결말은 구원이란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임을 상징한다. 레이는 반대로 악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실은 복수라는 틀 안에서 자신이 잃은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이다. 그 역시 구원을 갈망하는 또 다른 얼굴이다. 유이는 사회적으로 버려진 존재지만, 오히려 영화 속에서 가장 순수한 인간성을 지닌다. 그녀는 인남에게 ‘너도 아직 인간이야’라고 말하는 존재이자, 관객에게 남은 희망의 상징이다. 이 세 인물의 교차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인간은 악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의미와 유산

이 영화는 개봉 당시 435만 관객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시기의 극장가를 지켜낸 대표작이 되었다. 비평적으로는 ‘감정이 살아있는 액션 느와르’, ‘한국형 미학 액션의 진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홍원찬 감독은 복수와 구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장르적 쾌감 속에 녹여내며, 한국 느와르를 새로운 미학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작품은 단순히 두 남자의 피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 성찰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인남이 남긴 건 오직 아이의 생존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악의 세계 속에서도 구원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결국 이 영화는 액션의 껍질 속에 숨겨진 인간의 본질, 그리고 구원의 불가능성을 탐구한 비극적 명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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