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반영하고 재구성하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해왔다. 빈곤·노동·젠더·권력 구조·가족 해체·교육·군대 문화·권력형 범죄 등 다양한 문제를 드라마는 사건의 형태로 변형해 재현한다. ‘D.P.’, ‘나의 아저씨’, ‘작은 아씨들’, ‘더 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생’ 등의 사례를 중심으로 K-드라마가 사회문제를 어떤 서사적 방식으로 구축해왔는지를 산업적·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한국 드라마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독자적 미학을 구축해왔다
한국 드라마의 사회문제 재현 방식은 특정 이슈를 단순히 드라마화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억압을 인물의 감정선·사건의 흐름·공간의 질감으로 전환하는 독특한 접근을 사용해왔다. 이러한 방식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서사적 성격을 지닌다. 즉, 드라마는 객관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현실적 갈등을 정서·이미지·인물 관계를 통해 해석하고 감정화하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연출과 작가의 시각은 현실의 단면을 선택적으로 강조하거나 축소하며 작품의 세계관을 견고하게 구축한다. 예를 들어 군대 내 폭력과 구조적 억압을 다룬 ‘D.P.’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공기·억압의 시스템·회피할 수 없는 구조를 장면화하며 사회문제를 관객의 시선 안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노동과 조직 내 권력 구조를 다룬 ‘미생’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축적된 불평등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며 시청자에게 익숙한 감정을 자극한다. ‘나의 아저씨’는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고립·부채·폭력 구조를 인물의 발화·정적·공간의 조도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사회문제가 개인에게 남기는 감정적 잔여물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복수 서사로 해체하며 권력형 폭력이 어떻게 사회적 방관 속에서 지속되는지를 강렬하게 드러냈다. ‘작은 아씨들’은 자본 권력·정치 권력·종교 권력이 결합한 구조화를 스릴러 서사로 변환해 사회문제가 어떻게 은밀하게 작동하는지를 재구성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법제도와 장애 문제를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따뜻한 관찰과 현실적 갈등으로 변환하며 사회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현한 사례였다. 이처럼 K-드라마는 사회문제를 재현할 때 뉴스적 정확성에 집중하기보다, 감정적 현실감과 구조적 맥락을 서사적 장치로 바꾸어 시청자가 문제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본 글은 한국 드라마가 사회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변환·재구성·재현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제공하며, 작품 사례를 통해 그 방식의 확장 가능성과 한계를 비평적으로 검토한다.
인물 중심 재현
한국 드라마가 사회문제를 다루는 가장 두드러진 방식은 문제를 ‘사건’이 아닌 ‘인물’의 감정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인물 중심 서사는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그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따라가며 현실적 공감을 쌓아간다. 대표적으로 ‘나의 아저씨’는 빚·폭력·고립 등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지안이라는 인물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 묶여 있는 삶을 세밀한 정적·표정·걷는 속도·공간의 어둠으로 표현하며, 문제의 원인을 구조 대신 인물의 삶의 밀도에 배치한다. 이는 ‘사회문제의 감정화’라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서사 방식으로, 시청자는 문제를 분석하는 대신 그 문제의 감정적 결과를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미생’ 역시 사회문제를 인물의 경험을 통해 재구성한다. 비정규직·직장 내 권력 구조·업무 압박 등 구조적 문제를 장면 내 갈등으로 변환해, 조직 속 개인의 생존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장그래라는 인물은 ‘문제의 상징’이 아니라 ‘문제 안에서 생존을 시도하는 정체성’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드라마는 사회문제를 구조화하는 동시에 시청자의 감정적 몰입을 유도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법제도·차별 문제를 인물의 성장과 직업적 갈등으로 재해석했다. 장애라는 사회적 문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물이 가진 고유한 세계 인식’으로 제시되며, 이를 통해 시청자는 사회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인물 중심 재현은 사회문제를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이슈’로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오히려 감정 중심 접근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체감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만의 특징적인 서사 전략이다.
장면화 방식
사회문제는 종종 추상적이며, 이를 드라마는 이미지와 장면을 통해 구체화한다. 즉, 장면화는 사회문제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재현 방식이다. ‘D.P.’는 군대 내 폭력과 억압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카메라 거리·프레임의 흔들림·조명 부족·공간의 닫힌 구조를 통해 문제를 장면화했다. 무겁고 답답한 복도·좁은 생활관·미세한 소리·감정 없는 지휘의 톤은 한국 군대 내 권력 구조의 억압성을 시청자의 시각·청각 모두에 체감하게 만드는 기법이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잔혹하게 보여주는 대신 폭력 이후의 고요·절망·침묵에 집중했다. 폭력 장면보다 폭력이 남긴 후유증과 그 후유증이 인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장면의 빛·색·정적을 통해 표현했다. 분노의 장면보다 고통을 보여주는 방식은 사회문제의 본질이 ‘사건의 잔혹함’이 아니라 ‘구조적 방관’임을 드러낸다. ‘작은 아씨들’은 자본 권력이 가진 은밀한 폭력을 미술·색채·공간의 구조로 재현했다. 화려한 저택, 대칭적 구조, 과도하게 정리된 공간 등은 자본 권력의 불투명함과 폭력적 성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기법이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조명의 조도는 경제적 빈곤·정서적 고립·사회적 무력감의 시각적 은유로 작용했다. 공간을 밝히지 않는 방식은 인물이 세상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를 시각적으로 고착시키며, 사회문제를 감정의 공간으로 변환했다. 이처럼 장면화는 사회문제를 감정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이며, 한국 드라마는 이 장면화 능력이 독보적으로 발달해 있다.
서사 구조
사회문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서사의 핵심 축으로 사용하는 것은 K-드라마의 중요한 특징이다. 문제는 사건을 일으키는 동력으로 사용되며, 인물의 선택과 변화는 사회문제의 구조적 흐름과 맞물려 움직인다. ‘미생’은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노동 문제와 직결시켜 ‘개인의 무력감’과 ‘조직 권력의 구조’를 서사의 양극으로 배치했다. 사회문제는 배경이 아니라 인물이 움직이는 구조적 힘으로 작용한다. ‘D.P.’는 군대라는 폐쇄적 공간을 ‘도망’이라는 반복적 서사 구조로 변환해, 탈영이라는 사건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문제임을 드라마 전체의 리듬 속에 삽입했다. ‘작은 아씨들’은 자본 권력의 구조를 스릴러 서사의 근간으로 사용해, 사회문제를 장르적 긴장으로 변환하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복수’라는 서사 구조와 결합해, 문제가 단순히 경험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의 순환 구조임을 드러냈다. 이렇듯 사회문제가 서사의 중심축으로 재배치되는 방식은 한국 드라마가 문제를 단순 소재가 아닌 구조적 서사로 재구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의 사회문제 재현
한국 드라마는 사회문제를 사실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인물의 감정·장면의 공기·서사의 리듬·공간의 질감으로 변환해 시청자가 문제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비판이나 고발이 아니라, 문제의 구조적 본질을 드라마적 형식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전략이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장르 서사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감정 소비를 유도하거나 문제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사회문제 재현이 ‘흥미 요소’로만 소비되는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가 사회문제를 섬세하게 장면화하고 감정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세계적 경쟁력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향후 K-드라마가 사회문제를 재현하는 방식은 더 섬세해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문제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문제의 구조적 흐름과 감정적 잔여를 함께 드러내는 방식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한국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서사적 장치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