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 드라마의 시즌제 도입과 그 한계: 연속성의 실험과 완결성의 긴장

by aicarrolls 2025. 10. 31.
반응형

 

 

한국 드라마의 시즌제 도입은 산업적 실험이자 서사 구조의 진화이다. ‘킹덤’, ‘D.P.’, ‘스위트홈’, ‘마이 네임’ 같은 작품들은 시즌제를 통해 캐릭터의 서사를 확장하고 세계관을 구축하는 시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방송 환경, 제작비, 시청자 피로도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완성도 높은 시즌제 정착을 방해하고 있다. 본 글은 한국 드라마가 왜 시즌제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산업적·서사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한 회차의 완결에서 시즌의 연속으로

한국 드라마는 오랜 기간 단일 시즌 중심의 완결형 구조를 유지해왔다. 16부작 혹은 20부작 포맷은 ‘한 작품, 하나의 이야기’라는 명확한 서사적 규칙을 전제로 했다. 이러한 구조는 강한 감정 몰입과 완결성 면에서 효율적이었지만, 캐릭터의 성장이나 세계관의 확장은 어렵다는 한계를 지녔다. 시즌제는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넘어 새로운 서사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였다. ‘킹덤’을 시작으로 ‘D.P.’, ‘스위트홈’, ‘마이 네임’, ‘시그널’, ‘보이스’ 등은 각각 장르적 특성을 살리며 시즌제 포맷을 실험했다. 이들 작품은 영화적 긴장감, 복합적 캐릭터, 그리고 세계관의 확장성을 갖춘 서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한국형 시즌제는 단순히 서양의 방식을 모방한 것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는 감정의 밀도와 정서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서사의 ‘끊김’이 곧 감정의 ‘이탈’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시즌제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를 넘어 감정 구조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이 글에서는 시즌제가 한국 드라마에 가져온 변화와 그로 인해 드러난 한계를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산업 구조, 시청자 수용 태도, 그리고 서사적 완결성의 측면에서 한국형 시즌제의 현재 위치를 비평적으로 살펴본다.

 

시즌제 도입의 배경과 산업적 동인

한국 드라마가 시즌제 포맷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2010년대 후반 이후다. 그 중심에는 OTT 플랫폼의 성장과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산업적 배경이 있다. 지상파 방송 중심의 구조에서는 일정한 편성표와 광고 수익 모델이 존재했기 때문에, 드라마의 시즌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등 OTT의 부상은 이 구조를 해체했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방송 시간에 맞춰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고, 원하는 작품을 원하는 시간에 몰아보는 ‘정주행 문화’를 형성했다. ‘킹덤’은 한국형 시즌제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전통 사극에 좀비라는 장르적 요소를 결합하고, 각 시즌마다 새로운 갈등과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통망은 ‘킹덤’을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켰으며,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D.P.’는 병역 문제라는 사회적 현실을 서사 중심에 배치하면서, 시즌마다 사회 구조의 다른 층위를 탐색했다. 1시즌에서는 탈영병의 사연과 구조적 폭력을, 2시즌에서는 제도와 시스템의 비극을 다루었다. 이러한 서사적 확장은 완결형 드라마에서는 불가능한 시도였다. 결국 시즌제는 산업적 필요와 서사적 실험이 결합한 결과였다. 콘텐츠의 수명이 짧아지는 시대에, 시즌제는 IP 확장과 장기적 수익 창출의 전략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동시에 제작비 상승, 배우 스케줄 조율, 시청자 유지라는 새로운 난제를 수반했다.

 

 

서사 구조의 변화: 확장성과 완결성의 긴장

시즌제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결말’과 ‘서사적 연속성’이다. 완결형 드라마가 감정의 절정에서 닫히는 구조라면, 시즌제는 감정을 미결 상태로 유지하며 다음 서사를 예비한다. ‘스위트홈’은 시즌 1에서 인간의 내면과 괴물의 상징을 병치했고, 시즌 2에서는 사회적 시스템 속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서사의 범위가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시청자는 서사의 집중도가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즉, 감정의 몰입을 유지하면서도 서사를 확장하는 균형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보이스’ 시리즈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시즌제 대표작으로, 매 시즌 새로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동일한 주제 의식을 유지한다. 그러나 후반 시즌으로 갈수록 사건의 자극성이 강조되며 초기의 서사적 긴장감이 약화되는 문제를 겪었다. 이는 시즌제 드라마가 흔히 빠지는 ‘반복의 함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형 시즌제의 핵심 과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완결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세계관을 확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의 농도와 서사의 지속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한국 드라마 특유의 정서적 미학과 긴밀히 연결된다. 따라서 시즌제의 성공은 단순히 구조의 문제를 넘어, 감정의 리듬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작 환경과 시스템의 구조적 제약

한국 드라마 산업은 여전히 시즌제에 불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제작비와 수익 분배 문제다. 완결형 드라마는 방영 후 광고나 판권 수익으로 회수 가능하지만, 시즌제는 장기 투자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중소 제작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둘째, 배우 스케줄 문제다. 시즌이 이어지려면 동일 배우의 장기 계약이 필요하지만, 한국 연예 산업 구조상 배우들은 차기작 일정에 맞춰 자유롭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보이스’, ‘검법남녀’, ‘시그널’ 등은 시즌이 이어질수록 캐릭터가 교체되거나 공백이 생겼다. 셋째, 기획 단계에서의 불안정성이다. 대부분의 시즌제가 시즌 1의 흥행 여부에 따라 시즌 2 제작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장기적 플롯 설계가 어렵다. ‘시그널’ 시즌 2가 오랫동안 제작되지 못한 이유 역시 제작진의 의지가 아니라 산업 구조의 문제였다. 넷플릭스가 제공한 자본과 시스템은 이런 제약을 일부 해소했다. ‘킹덤’과 ‘D.P.’는 처음부터 다중 시즌을 전제로 제작되었고, 세계관 설계 또한 장기 플롯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넷플릭스라는 외부 자본에 의존하는 구조로, 국내 산업의 자생력 측면에서는 한계를 남긴다.

 

 

시청자 피로도와 감정의 지속 가능성

한국 드라마의 핵심 강점은 ‘감정의 밀도’다. 16부작 안에서 인물의 감정이 응축되고 폭발하는 구조는 시청자에게 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시즌제가 도입되면 감정의 절정이 다음 시즌으로 연기되거나, 이전 시즌의 감정선이 단절되는 문제가 생긴다. ‘더 글로리’는 사실상 시즌제를 염두에 둔 두 파트 구조였지만, 일부 시청자는 “긴장감이 파트2에서 다소 완화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감정의 호흡이 한 시즌 단위로 재설정될 때 발생하는 전형적 현상이다. 또한 시즌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캐릭터나 서사적 변수가 도입되어야 하는데, 이는 감정의 연속성을 약화시킨다. ‘보이스’ 시리즈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캐릭터 중심 서사보다 사건 중심 서사로 이동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시청자의 피로도는 감정의 리듬과 직결된다. 시즌제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만드는 서사적 여운’을 남기면서도, ‘현재 시즌에서의 감정적 완결’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시청자는 ‘기다림’이 아니라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형 시즌제의 가능성과 향후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시즌제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D.P.’ 시즌 2는 캐릭터의 성장과 제도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며 시즌제의 내러티브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고, ‘스위트홈’은 CG 기술과 세계관 확장 측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더 나아가, 시즌제는 드라마를 ‘단발성 감정 소비’에서 ‘장기적 IP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시즌이 이어질수록 캐릭터의 상징성과 브랜드 가치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이는 웹툰, 영화, 게임 등 다른 미디어로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한국형 시즌제가 완전한 구조로 정착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장기 플롯 설계를 가능케 하는 산업적 안정성. 둘째, 제작진의 일관된 창작 비전. 셋째, 시청자의 감정 피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내러티브 기술. 이 조건들이 충족될 때, 한국 드라마는 단순히 서양의 시즌제 형식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감정 중심의 ‘K형 시즌제’라는 독자적 구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연속성과 완결성 사이에서

시즌제는 한국 드라마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더 이상 ‘16부작 완결’이라는 경직된 틀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 세계관과 복합적 감정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아직 완전한 성공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한국형 시즌제의 핵심 과제는 감정의 지속성과 산업의 안정성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이다. 자본이 안정되더라도 감정의 리듬이 무너지면, 한국 드라마의 정체성은 흔들린다. 반대로 감정의 농도에만 의존한다면 세계관 확장은 어렵다. ‘킹덤’과 ‘D.P.’는 그 균형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다수의 작품이 여전히 구조적 제약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시즌제는 아직 ‘형태의 실험’에 머물러 있으며, ‘감정의 구조화’라는 본질적 과제는 진행 중이다. 시즌제는 단순히 방송 포맷의 변화가 아니라, 감정의 시간 구조를 재편하는 작업이다. 한국 드라마가 진정한 시즌제 시대를 맞이하려면, 세계의 서사 방식을 따르기보다 한국적 감정 구조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 시즌제 문법을 완성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K-드라마 시즌제의 진화일 것이다.

반응형